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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부치다

등록일21-11-30 조회수193 댓글0
1년을 부치다

아버지의 벼 베던 날을 생각하니 거사를 앞둔 것처럼 마음이 바빠졌다. 콤바인을 예약하면서도 마음은 야릇하게 들떠 있었다. 그러나 콤바인 기사는 톤백(1톤짜리 포대)만 논둑에 갖다 놓으면 되니까 논에 나올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는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려는 내 기분을 그렇게 물건값 흥정하듯 간단히 깎고 들었다.
그 기쁨을 맛보려고 미리부터 연차를 내놓고 기다리던 참인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콤바인보다 1시간 일찍 논둑을 서성였다. 샛노랗게 물든 눈으로 예쁘게 고개 숙인 나락을 쓸어보기도 하고, 흡족히 고개도 끄덕여보았다. 그래, 그래, 내 논둑에서, 오늘은 거들먹거려도 충분히 좋을 날이었다. 내 1년이 궁금했던 종기가 참을 사들고 왔다. 형제 이상으로 의지하고 나누고 사는 후배다.
콤바인과 트럭 두 대가 도착했다. 정말 내가 할 일은 없었다. 흰 모시 입은 옛날의 지주처럼 논둑만 서성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남짓 콤바인이 달리기를 하고, 농협과 계약재배한 산물벼를 트럭이 RPC까지 왕복하는 게 수확 작업의 전부였다.
1,600평을 베기부터 탈곡까지 2시간, 콤바인은 거의 인부 100여 명이 할 일을 뚝딱 해치우고 있었다. 느긋하게 수확을 즐기고 싶은데, 그 신속함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트럭기사는 수확량을 섬으로 계산해보더니 “닷 섬 반은 될 것 같은디. 평년 농사가 넉 섬잉게. 아조 풍년이고만. 초보가 농사를 기가 막히게 잘 져부렀고만. 저 볏짚 좀 봐. 오매, 볏짚도 진짜로 깨끗하고만.”
내 귀가 열리고, 입가가 벙근다. 여름내 눈 비비며 새벽마다 물을 대고, 예취기 날 휘젓고, 동력분무기 매고 허둥대던 날들이 스쳐갔다. 유독 내 몸에 농사꾼의 유전자가 흘러 풍년을 맞이한 것은 아닐 터이다. 올해는 날씨 덕이 8할이다. 그렇게 겸손해져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
가득 담긴 톤백 다섯 개는 계약재배 물량으로 보내고, 남는 것 300여 킬로그램은 종기 트럭에 실어 정미소를 운영하는 후배에게 보냈다. 내 수확의 기쁨을 순백으로 나누리라. 가까운 이들에게도 내 1년을 나누리라.
벼는 수확 1주일만에 10킬로그램들이 스무 개의 쌀이 되어 왔다. 친형제, 처형제 그리고 또 화들짝 기뻐해 줄 몇의 얼굴이 스쳐 갔다. 그들에게 그냥 쌀이 아닌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그들의 가족이 새하얀 밥을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가슴이 팽팽해졌다.   
쌀은 택배 회사 창고에서 여러 밤을 보냈다. 월요일에 맡겼는데, 금요일에 도착한다고 했다. 포대 종류는 목요일에 출발한다는 직원의 불친절한 설명에도 나는 따지지 않았다. 얼른 보내고 싶었지만 순백의 기쁨이 오염될 것 같아서였다.
드디어 금요일 웃음으로 화답이 왔다. 인천으로 간 쌀은 아버지 기일까지 기다려 상에 오른 후에야 맛을 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쌀 알갱이는 그 형 눈에 눈물 알갱이를 쏟아냈다고 했다. 환갑 지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는 형은 내 첫 농사의 기쁨을 받고서 그렇게 펑펑 울었다고 했다.
시를 쓰는 서울의 친구는 내 쌀을 전율이라 표현했다. 내 가슴 들뜬 농사 과정을 알고 있으니 그럴 법 했다. 형제들에게서는 전화가 오고 카톡이 오고, 나는 다시 그 때문에 행복해졌다. 이렇게 기쁨이란 나누면 여러 날 새삼스러운 행복이 되어 돌아왔다.
혼자가 아니다. 늘 함께 살아가는 게 세상이다. 내 기쁨을 나눌, 내 조촐한 자랑을 들어줄 사람이 있어서 좋다. 휑한 들판을 스쳐온 바람이 가로등 불빛 테두리처럼 둥그렇게, 노란 은행잎으로 쌓여가는 늦은 가을이다. 다시 푸르러질 날들을 위하여 지금은 휴식의 시간이다.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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